전시 치료기록 없어 국가유공자 안 돼…6.25전쟁서 청각장애 얻은 노병의 눈물

삶이 얼마 남지 않은 6.25참전 노병의 눈물 누가 닦아주나?

6.25참정 노병 김경식 옹이 31일 부산지방보훈청 민원실을 찾아  접수한 서류를 찾기위해 대기하는 모습

“전시 치료기록이 없어서 국가유공자가 안 된다고 해!”

1931년생 올해 91세인 ‘김경식 옹’이 딸 김점선 씨를 대동하고 국가유공자 지정을 받기 위한 서류준비를 위해 부산지방보훈청에 신청한 정보공개요청서를 찾으려고 31일 민원실을 찾아 한 말이다.

김 옹은  6.25전쟁 당시 오른 쪽 귀를 다쳐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채 평생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포탄이 빗발치던 6.25전쟁 참전 중 적과의 대치로 치열했던 강원도 양구 전쟁터에서 보급품(쌀)운송 도중 폭탄이 폭발하여, 그 충격으로 한쪽 귀를 다쳐 야전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귀는 들리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어렵게 살아남아 제대를 한 후 생활고을 견디며 삶을 영위해오던 중 2010년도 부산국군병원에서 청각장애2급 진단을 받았다.

그 후 국가유공자 신청을 위해 함께 군복무를 했던 전우 ‘이종태’ 씨의 ‘인우증명’을 받아 서류를 접수했다. 그러나 전시에 폭탄이 터져 다쳐서 치료받은 기록을 가져와야만 인정이 된다며 1차 서류접수는 비유공자로 지정되었고, 또다시 2차 서류접수 역시 비유공자로 지정되었다.

그는 자신이 당한 희생이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2022년 10월 28일 이의신청을 접수했다.

김경식 옹은 “전시에 폭탄이 터져 귀가 아파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며 “제대 후 먹고살기가 힘들어 견디면서 살아왔다”면서 “전시에 폭탄이 터져 다쳐서 치료받은 기록을 가져 오라고 하는데 당시 전쟁터에서 제대로 기록을 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찾느냐”며, 회한의 눈시울을 적셨다.

노인은 한 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평생 동안 꼭 듣고 싶었던 말을 이번 이의신청을 통해 들을 수 있을까.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있어 더 불편해보였다. 하얀 눈썹 밑으로 작게 보이는 눈은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기분이 어떨지도 알 수 없었다.

뼈아픈 역사 6.25전쟁, 그 희생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 국가와 민족의 죄가 크다. 이 땅의 후손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조국을 위해 싸웠다. 그런데도 국가는 희생자에 대해 전쟁터 야전병원에서 치료받았던 진료기록을 요구하며 국가유공자 인정을 해주지 않고 있다.

전쟁터에서 귀를 다치고도 사는데 급급해 평생 불편을 감내해온 올해 91세인 노인은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6.25참전 노병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어야 하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김 옹의 딸 김점선 씨는 “서류는 왜 이리도 까다로운지요. 전시에 다쳐서 평생 한쪽 귀 때문에 고생하신 우리아버지 부산국군병원에서 청각장애2급 진단서도 있고, 같이 군복무한 전우의 인우보증도 있는데 전시에 폭탄이 터져 다쳐서 치료받은 기록을 가져와야만 인정이 된다”며 “1931년생 91세인 우리 아버지는 한쪽 귀는 안 들리는데….늦게라도 공짜라서 국군병원 가서 치료 받고 장애진단 받았는데도 전시 치료기록이 없어서 안 된다”면서 “야전병원에서 치료기록을 보관 못한 건 아버지 잘못이 아니건만 해보고 또 해보고 또 해보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자식입장에서 노력해볼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김경식 옹이 딸 김점선 씨를 대동하고 민원실에 촬영한 사진

김경식 옹이 부산지방보훈청 민원실을 나와 지팡이에 의존해 걸어나오고 있다.  

김쌍주 기자 cap3555@hanmail.net

출처 : 폴리스TV(http://www.police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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