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달을 위한 별의 연주-17

얼마 전 한 기관에서 교육을 들어야 하는 일이 있어서 해당 기관에 문자통역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기관에서 문자통역을 제공해주겠다고 했는데, 난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내 노트북에 세팅된 한글파일에 문자통역 받길 원했다.
하지만 기관에서는 내가 요청한 장애인 편의제공이 ‘개인’ 문자통역이 아니라 ‘기관’ 문자통역이기 때문에 개인 노트북에 문자통역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기관문자통역은 규정상 교육 장소에 큰 모니터를 세팅하여 교육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문자통역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청각장애만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큰 모니터를 세팅하여 문자통역을 진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난 저시력으로 시각장애도 가지고 있다. 아무리 큰 글씨라도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야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교육 장소 맨 앞자리에 앉아도 세팅된 모니터의 글자를 읽을 수가 없다.
만약 함께 교육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모니터의 문자통역을 보는 데에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교육생 모두가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도 모니터의 글자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저시력인 경우는 가까이 가서 봐야 하기 때문에 읽기 어렵고, 전맹인 경우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시청각장애인에게는 저시력 시각장애의 정도에 맞춰진 글자크기, 글자체로 문자통역이 제공되어야 한다. ©박관찬
그래서 시청각장애인에게 제공하는 통역은 반드시 ‘일대일’로 지원되어야 한다. 시각장애의 정도가 전맹인 시청각장애인은 한소네(점자정보단말기)와 연결된 노트북에 문자통역을 하고, 저시력인 경우에는 저시력의 정도에 따라 보기 편한 글자크기와 글자체로 문자통역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기관에서 정하고 있는 기관문자통역에는 ‘일대일’ 통역이라는 메뉴얼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각장애인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신청할 경우 문자나 수어로 통역을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은 담겨 있겠지만, 시청각장애에 대한 내용은 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각장애는 장애인복지법상 15가지의 장애 유형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걸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통역이라는 지원을 하기 위한 메뉴얼이 있다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이 통역을 받는 대상자가 가진 특성을 면밀하게 파악한 게 아니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당사자들의 욕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다. 쉽게 말해서 장애인에게 맞춰진 제도가 필요한데, 현실은 제도에 장애인이 끼워 맞춰야 하는 것이다.
씁쓸했던 경험
문자통역을 내가 신청했는데 큰 모니터에 문자통역을 하게 되면 내가 그걸 볼 수 없다. 내가 가진 장애의 특성과 큰 모니터의 글씨를 보기 어렵다는 걸 설명하자, 기관 담당자는 규정대로 큰 모니터에 문자통역을 진행하되 내 개인 노트북을 큰 모니터에 연결하여 문자통역 받는 방법을 제안했다.
다행히 큰 모니터에 내 개인 노트북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문자통역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문제가 잘 해결되는 듯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가 큰 모니터에 문자통역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였다. 자기가 말하는 게 실시간으로 큰 모니터에 문자통역되는 걸 보고 부담스럽다고 했단다. 그래서 큰 모니터에 문자통역하지 말고, 문자통역을 필요로 하는 내 개인 노트북에만 문자통역을 진행하라는 것이였다.
그 교육을 듣는 사람들 중에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 한 명밖에 없다. 그래서 큰 모니터를 통하지 않고 내 개인 노트북에만 문자통역을 제공해도 큰 문제는 없다. 오히려 애초 내가 원했던 시나리오대로 속기사가 내 바로 옆에 앉아서 내 개인 노트북에 문자통역을 해주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지만, 그 과정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내 개인 노트북에 문자통역을 해달라는 요청이 처음부터 받아들여지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지금 이 상황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다른 원인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기가 말하는 걸 실시간으로 문자통역되는 게 부담스럽다니. 물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 대화도 아니고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자리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사람이라면 그 교육을 듣는 사람 중에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자신이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을 청각장애인이 원활하게 전달받기 위해서는 문자나 수어처럼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통역이 이뤄져야 한다. 그중 하나가 큰 모니터를 통해 많은 청각장애인이 볼 수 있도록 문자통역이 이뤄지는 것이다.
만약 해당 교육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나 외에도 두 명 이상이 잇었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강사가 큰 모니터 문자통역이 부담스러워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데, 그럼 청각장애인들은 시청각장애인처럼 일대일로 통역이 제공되어야 할까? 적어도 기관문자통역 메뉴얼에 그런 내용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장애인이 편의제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기관도 있다. 정말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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